두 번째 군산 여행
회사를 새로 옮겼는데, 이곳은 휴가를 마음놓고 쓰기가 조금 눈치 보이는 곳이다. 게다가 혼자 일하는 자리도 아니고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보니 자리를 오래 비우기도 힘들기도 하다. 팀원 시절에는 몰랐으나 팀의 리더가 되었을 때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고 마냥 자리를 쉽게 비우기도 어렵다. 그래도 엄마와 호호의 방학 때면 당연히 휴가를 내고 함께 어딘가로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궁리한 끝에 군산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군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확히 2년 전 이 맘때 엄마와 아빠 둘만 이 곳을 짧게 여행한 적이 있다. 호호는 카이스트 캠프를 갔었고, 우리는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군산을 왔던 것이다. 군산과 목포는 근대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제대로 여행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곳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때의 좋은 기억 덕분에 이번 여행도 주저없이 이 곳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조금 달랐다. 출발을 위한 준비과정부터 티격태격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반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순조롭게 준비를 했고 출발하는 과정도 매끄러웠다. 물론 이동 초반에 살짝 위기가 잠깐 왔지만 다행히 금방 수습이 됐다. 아무 문제 없이 출발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 여행 준비를 간소하게 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매번 어디 여행 갈때는 한 번에 짐을 다 가지고 가지 못할 정도로 잔뜩 챙겨 갈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다들 등에 하나 메고 다른 한 손으로 들고 나갈 정도의 짐만 챙겨 나갔다.
일요일 오전의 고속도로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차는 많지 않았다. 아주 시원하게 뻥뻥 뚫린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답답한 없는 교통 흐름을 타고 빠른 속도로 군산으로 향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고군산군도. 이 곳은 2년 전에 왔을 때, 강한 추위를 뚫고 선유도와 장자도를 이어주는 보행교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던 곳이다. 선유도를 비롯해 주변 섬들의 풍경이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때는 대장도에 있는 대장봉을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곳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점심은 선유도에 있는 해물칼국수 집에 그냥 들어가 먹었다. 맛집을 열심히 찾아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식당이 별로 없는 곳이어서 그냥 보이는데로 들어갔다. 식당에 난방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추위에 떨며 주문한 칼국수를 기다렸다. 막상 음식이 나오니, 생각보다 양도 적고 바지락도 많지 않았다. 역시 이런 류의 음식은 내륙지방에서 먹는게 가성비가 더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장자도로 이동 후 대장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장봉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매우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있다. 겨울이라 자전거로 허벅지 단련을 한 상태도 아니어서 그런지 올라가는데 힘이 부쳤다. 호호는 날다람쥐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지만, 그게 무리였는지 나중에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힘들게 오른 대장봉에서 본 고군산군도의 절경은 정말 멋졌다. 하늘의 구름이 아쉬웠지만 다시 한 번 더 오를거냐고 물어본다면, 주저함 없이 그래야 하는 곳이라고 할만한 곳이다. 날이 맑았다면, 정말 멋진 고군산군도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장봉을 내려와 우리는 길쭉이 호떡을 먹으러 갔다. 호떡 가게에는 댕댕이가 4마리 있었는데, 하나같이 모두 개성있는 녀석들이었다. 진돗개도 있었고, 말라뮤트와 진돗개의 믹스, 사모예드와 진돗개의 믹스가 있었다. 소파에서 잠을 자던 녀석은 견종도 모른다. 아마 댕댕이개의 최고 존엄인 시고르자브종이 아닐까 싶다. 진돗개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우리가 다가가자 쓰담쓰담 해 달라고 다가왔다. 쓰담아 주던 손을 멈추면 왜 멈추냐고 묻는 듯 쳐다보던 것이 재밌었다. 길쭉이 호떡은 기름에 튀기듯 익힌 호떡보다는 조금 맛이 떨어지지만 건강에는 훨씬 좋을 것 같은 맛이었다.
고군산군도를 나와 우리는 숙소인 ‘책방 게스트하우스’를 향했다. 새만금 방조제를 빠져나와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군산 지리를 몰라서 전적으로 내비게이션에 의존했는데, 티맵의 경로 안내가 참으로 이상했다. 멀쩡히 큰 도로로 계속 가면 되는 것을 어떤 공장 앞에 있는 샛길로 들어갔다가 바로 다음 블럭에서 이전에 오던 도로로 가게 만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우리를 골탕 먹인 것이 여러 번 생겼다. 앞으로 조금 의심스러운 안내를 할 때면, 미리 지도를 축소해서 큰 길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2인실에 인원 한 명을 추가할지, 기준인원 3인인 방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3인실로 했는데,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비록 계단을 한 번 더 올라가야 했지만, 여유있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은 서해에 인접한 도시에 왔으니 회를 먹기 위해 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횟집 선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엄마의 최종 선택지인 집을 갔으나, 아쉽게도 영업을 하지 않았다. 차선으로 생각했던 ‘비발디 횟집’으로 향했다. 중간급의 회정식 코스를 시켰는데, 우리 가족의 먹는 양에 비해 음식이 많이 나와서 정작 회를 많이 못 먹었다. 광어를 잘 안 먹는 호호 때문에 급을 올리고 돔을 더 달라고 하며 주문했으나 스끼가 너무 많이 나와서 정작 우리를 배려하여 돔을 많이 섞어 준 회는 절반은 남긴 듯하다. 이날 중간에 나온 ‘복어 튀김’ 때문에 걱정 많은 호호는 꼬박 24시간을 복어 먹은 후유증 걱정을 했다. 이것 때문에 둘째날 여행이 조금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배가 터지도록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와 TV를 봤다. 그날 대선후보의 부인 관련 큰 이슈거리가 방송된다고 하여 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별거 없어 보여서 실망스러웠다. 물론 사후 해석들을 보면 생각보다 문제가 될 발언들은 많이 있었던 것이 맞았으나, 이런 이슈에 정말 관심이 많은게 아니었으면 우리처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는 가서 책도 많이 보고, 가글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모든 것은 TV 때문에 틀어지게 되는 것 같다. 밤 늦게까지 TV를 보다가 잤다. 바닥이 너무 절절 끓어서 처음에는 좋았으나, 잘때는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둘째 날 오전 일정은 근대문화거리를 돌아보고 동국사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빈집이 많아서 조금 썰렁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양이들이었다. 숙소에서 나오면 바로 옆 블럭이 군산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빵집인 이성당이 있는 곳이어서, 그곳을 들러 생크림팥빵과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커피는 가격은 저렴했는데, 맛도 그랬던 것이 아쉬웠고, 생크림이 가득했던 팥빵은 아주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었다. 칼로리는 물론 높았겠지만 말이다.
이성당을 나와 동국사로 가는 길에 잘 꾸며진 골목이 보여 들어갔다. 그 곳에서 내가 어렸을 때 사용하던 초등학교 책상과 의자가 있어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오는데, 담벼락 위에 고양이가 시선을 빼앗았다. 길냥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튀어나온 담의 일부분을 밟고 올라서니 담과 연결된 지붕 끝에서 다른 고양이 두 마리가 더 있어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담벼락 위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던 회색 고양이가 지붕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하다 미끌어지며 실패하는 것을 보는게 재미있었다. 지붕 끝에는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더 있었으니,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길냥이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 맞는 듯 하다.
동국사로 가는 길에도 고양이는 여러 마리를 봤고, 절 안에서도 잠자는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고양이를 많이 봐서 즐거웠다. 길냥이를 만나면 주려고 츄르도 샀었는데, 다음에 군산을 또 오게 된다면 여행 준비물에 고양이 츄르를 포함시켜야겠다. 동국사는 일본식 사찰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찰과 조금 느낌이 다른 것을 빼면 그다지 볼만한 것은 없던 것 같다. 사찰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안 생겨서 그런 것 같다. 동국사 뒤편에 100년이 넘은 대나무숲은 볼만했다. 이 대나무들의 뿌리가 결국 하나로 다 이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뒤늦게 책에서 봤는데, 그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신비로운 숲이 아니었나 싶다.
해망굴로 향하는 길에는 일부러 근대문화거리를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바꿔 가면서 걸었다. 노리고 간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들이 오면 꼭 들르는 곳 중 하나인 초원사진관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영화를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 사실 그곳이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나에겐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해망굴은 그 당시에는 흔한 시설은 아니었을테고, 우리나라에는 안 좋은 굴이었지만, 모양 자체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굴다리와 다를게 없어서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해망굴을 보고 난 후 올라갔던 월명공원이 훨씬 좋았다. 야트막한 산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각공원과 수시탑을 가 보고,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군산 앞바다가 보기 좋은 곳. 아무래도 도심을 즐기는 것보다는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점심으로는 째보식당을 갔다. 관광객들이 줄서기 싫어서 이른 점심을 먹으러 온 건지 12시가 넘어갈 수록 손님이 줄어드는게 특이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뒤쪽에 아주 몰상식하게도 밥을 먹는 내내 영상통화 소리를 크게 내던 여성의 매너가 매우 기분 나빴다. 그래도 소리를 줄여준 것은 어디냐. 다행히 째보식당에서의 간장게장, 전복장, 새우장, 연어장은 호호와 엄마가 아주 좋아할 스타일이어서 점심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 후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 오래된 집, 폐가 옆으로 철길만 놓여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막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추억의 용품을 팔겠다고 나와 있는 수많은 가게들의 물건들이었다. 게다가 오징어게임으로 인해 더욱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 달고나체험. 군산에서는 절대 빼놓은 수 없는 관광지 중 하나여서 눈이 오는 날씨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달고나를 해 본적이 없는 호호의 달고나 체험은 괜찮았던 듯. 아줌마가 말이 좀 많아서 그랬지, 매우 친절하기도 했다.
이후 철새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갔으나, 우리가 인터넷으로 본 것과 다르게 휴관이어서 허탕을 치고 말았다. 다행히 바로 앞에는 넓은 공원이 있어서 그곳을 간략히 돌아봤다. 그곳에는 금강 자전거길 인증센터도 있는데, 다름에는 자전거 타고 그곳을 다시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날씨도 흐리고, 날아다니는 철새도 없어서 조금 썰렁했던 것이 아쉬웠다.
군산 외곽을 빙 돌아서 은파호호공원 옆에 있는 카페 ‘빈타이’는 전망이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음료가 개성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 평이한 카페였던 것 같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더웠던 탓도 있을 거고,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호호 조망을 갖춘 카페는 너무 많아서 특이한 점은 잘 모르겠다.
저녁은 근대문화거리에 있는 베트남 칼국수 하는 곳에 가서 먹었다. 엄마와 둘이 갔을 때 이 곳에서 먹은 반미가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 때문에 갔다. 반미는 여전히 괜찮았지만, 서비스로 받은 스프링롤은 그닥 맛이 없었고, 쌀국수는 호호가 잘 먹을 것 같아서 곱빼기로 시켰으나 생각보다 훌륭한 맛은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이렇게 이틀의 관광을 마치고, 나는 다음 날 새벽 5시 40분 버스를 타고 혼자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버스가 출발할 때 티맵으로 찍은 도착 예정 시간이 8시 30분이 넘어서, 회사에는 지각이겠구나 싶었지만 역시 버스 전용차선의 위엄 덕분에, 약간의 정체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8시 14분에 터미널에 도착해서 회사에는 정시 출근을 성공했다.
이틀의 짧고 굵은 군산 여행. 제대로 알고 돌아다니면 더 즐길 거리가 많을까나.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월명공원을 제대로 돌아서 위에 있는 저수지도 보고,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등의 일정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 다음 군산 여행은 우리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인증센터 도장을 찍으며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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